운정서화실 박등용 원장 “틀을 깨는 ’묵향’으로 파격적 실험과 진화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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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속도를 담아내는 붓끝... 전통 문인화의 새로운 경지를 열다

성남시 모란의 ‘운정서화실’. 도심의 소음이 잦아드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짙은 먹향이 공간을 채운다. 그 중심에서 붓끝에 기운을 모아 화폭을 가로지르는 운정 박등용 원장의 작업은 옛 선비들의 유유자적한 풍류를 오늘날의 살아있는 언어로 새롭게 빚어낸다. 


급변하는 시대정신과 마주하며, ‘살아있는 현대 미술’로서 문인화의 지평을 확장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박 원장은 디지털의 속도와 기계음이 지배하는 시대에, 아날로그적 재료를 들고 인간 본연의 호흡을 화폭에 온전히 불어넣고 있다.



◇“가장 전통적인 것이 가장 과감한 실험이다”

전통 문인화는 흔히 고루하다는 편견에 갇히기 쉽다. 하지만 박 원장의 작업실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현장이다. 그에게 묵과 한지는 단순한 서화 재료가 아니라, 내면세계와 시대 정신을 투영하는 치열한 사유의 장이다.


“캔버스를 물감으로 꽉 채우는 서양화가 ‘채움의 미학’이라면, 우리의 문인화는 비워냄으로써 완성되는 ‘비움과 획의 미학’이다. 붓이 지나간 자리와 비어 있는 여백이 부딪치며 화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는 전통적인 물성을 꿰뚫으면서도, 과감한 구도와 파격적인 여백 운용으로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해 왔다. 화면을 압도하는 거친 선에는 만물의 생동감이 실려야 하고, 빈 여백은 감상자의 시선이 머무는 긴장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지론이다.


“속도가 미덕이 된 시대일수록, 손끝에서 나오는 묵향은 강력한 각성의 힘을 갖는다. 과거의 형식만 답습하는 문인화는 지나간 시대의 잔영에 갇히게 된다. 재료의 한계를 시험하고 시대의 호흡을 투영하는 실험이 지속되어야 현대 미술로 살아남을 수 있다”


◇글씨와 그림의 경계를 허물다, 캘리그라피 ‘운정체’의 구축

박 원장의 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축은 수년간의 연구 끝에 완성한 독창적 서체, ‘운정체’다. 문인화의 전통인 ‘시서화(詩書畫) 일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전통 서예의 굳건한 필법을 뿌리에 두되, 현대 캘리그라피의 유연한 조형미를 결합한 운정체는 그림 속에서 독립된 오브제로 기능한다. 글씨가 단순히 그림을 설명하는 보조 수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붓놀림과 먹의 농담 속에서 시각적 타격을 주는 주체로 기능하는 것이다.


최근 작명된 신작들에서 사물의 구체적인 형태는 파편화되고, 굵고 거친 선과 농담, 그리고 운정체로 적힌 시구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맞물려 독특한 시각적 에너지를 뿜어낸다.



◇붓끝으로 전해지는 시대의 안목, 후학이라는 씨앗

박 원장의 실험은 개인 작업을 넘어 성남시 모란의 ‘운정서화실’이라는 후학 양성 현장으로 이어진다. 인공지능이 정교한 이미지를 순식간에 찍어내는 시대이지만, 그는 “기계가 모방할 수 없는 영역은 화가의 내면과 인품”이라고 단언한다. 그렇기에 후학들을 지도할 때 형태를 흉내 내는 기교보다 인문학적 소양과 시대적 안목을 강조한다.


“문인화는 테크닉으로 그리는 그림이 아니다. 그리는 이의 인품과 정신이 붓끝을 통해 배어 나와야 하지요. 외형적 껍데기보다 이면에 담긴 정신적 가치를 꿰뚫는 안목이 먼저다”


이러한 지도 철학을 바탕으로 박 원장의 작업실을 거쳐 간 후학들 역시 타성적인 틀을 벗어나 각자의 개성을 담은 시도들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침체된 문인화계에 실질적인 자극이 되는 지점이다.


◇멈추지 않는 붓질, 문인화의 내일을 향한 도주

개인전 6회, 초대전 500여 회,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서예문화 최고위과정 강사 역임, 대한민국 미술협회 이사 및 심사위원, 그리고 대한민국 인물대상(문화예술부문) 4회 수상 등 화려한 이력 뒤에도 그의 눈빛은 초심자의 그것에 가깝다.


“아직도 내 마음에 온전히 차오르는 작품은 단 한 점도 없다. 진정한 의미의 진짜 작업은 이미 지나온 화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다음에 쥘 붓끝과 다음에 그려낼 미지의 화폭 속에 숨어 있다”


겸손한 웃음을 짓는 그에게 문인화는 평생을 매달려도 다 풀지 못한 숙제다. 전통이라는 뿌리를 놓지 않으면서도 현대 미학이라는 파도를 향해 기꺼이 돛을 올린 박등용 원장. 박제된 유산이 아닌, 지금 이 순간 호흡하는 예술로서 문인화를 증명해 보이는 그의 과감한 행보는 한국 미술계가 주목해야 할 현재진행형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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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10.03 11:40 수정 2026.10.0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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