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라자스탄의 작은 마을에서 축적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서울 평창동의 전시장으로 옮겨왔다. 사람과 동물, 나무와 마을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오래된 관계를 그려온 인도 현대미술 작가 타슬림 자말(Taslim Jamal)이 한국 관객과 만난다.
서울 종로구 E.N. Gallery는 인도 자이푸르의 Mukesh Art Gallery와 공동으로 자말의 개인전 ‘Beyond Borders’를 오는 30일까지 개최한다.
전시 제목처럼 이번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경계를 넘어선 연결’이다. 인도와 한국이라는 물리적인 국경에서 시작해 인간과 자연, 현실과 상상,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 존재하는 여러 경계를 회화를 통해 다시 바라본다.
자말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그가 성장한 라자스탄주 반스와라의 파르타푸르다.
부족 공동체의 문화와 자연이 일상에 깊숙이 자리한 이곳에서 그는 사람과 동물, 마을의 풍경을 바라보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 눈에 담았던 장면과 당시의 감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을 구성하는 기억의 재료가 됐다.
그의 화면에는 사람과 동물이 자주 함께 등장한다. 동물은 풍경을 채우는 장식적인 소재가 아니다.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기 이전부터 이어온 관계와 공존을 보여주는 존재다.
가족과 공동체 역시 중요한 주제다. 자말은 특정 부족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를 바라본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와 삶의 어려움, 그 속에서도 지속되는 희망을 단순화된 형태와 강렬한 색채로 표현한다.
지역에서 출발한 기억은 작품 안에서 현실 그대로 남아 있지 않는다.
대표적인 ‘Dreamland’ 시리즈에서 실제 풍경은 작가의 기억과 상상을 통과하면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장소로 변한다. 익숙한 사람과 자연의 모습이 꿈처럼 다시 배치되고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정이 한 화면에 겹쳐진다.
이 과정에서 라자스탄이라는 구체적인 장소는 점차 희미해지고 기억과 정체성, 가족, 자연처럼 문화권을 넘어 공유할 수 있는 문제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개인의 기억이 보편적인 인간 경험으로 확장되는 지점이다.
재료와 표현 방식에서도 하나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아크릴과 유화, 목탄, 잉크를 사용하고 에칭과 우드컷, 콜로그래프 등 판화 기법도 넘나든다. 여러 재료를 중첩해 만든 색과 질감은 현실과 꿈이 뒤섞인 자말 특유의 화면을 형성한다.
이번 서울 전시는 작품을 소개하는 동시에 한국과 인도 현대미술의 접점을 넓히는 자리이기도 하다. E.N. Gallery와 자이푸르 Mukesh Art Gallery가 공동으로 기획해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작가와 관객이 작품을 사이에 두고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도록 했다.
결국 ‘Beyond Borders’가 넘으려는 경계는 국경에 한정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기억과 다른 사람의 기억, 인간과 자연, 지역적인 삶과 보편적인 감정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이번 전시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의미다.
전시는 지난 8일 시작해 오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길 224 E.N. Gallery에서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