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평균 11권. 1990년 첫 책을 낸 뒤 36년 동안 쌓아 올린 책은 400권에 이른다. 누적 판매량 500만 부, 독자들을 직접 찾아간 강연은 5천 회를 넘어섰다. 아동·청소년 문학가 고정욱이 400번째 책에서도 익숙한 방식을 반복하는 대신 새로운 형식에 도전했다.
고정욱 작가가 웹툰과 동화를 결합한 신작 ‘다정한 말 단단한 말’을 출간했다. 더블북이 출판하고 ‘1인1책’이 기획한 작품으로 출판사 측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웹툰동화’라고 소개했다.
‘다정한 말 단단한 말’은 어린이에게 익숙한 웹툰의 시각적 표현에 동화의 서사와 교육적 내용을 결합했다. 긴 글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도 이야기 속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하면서 말이 사람의 감정과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구성했다.
제목의 ‘다정한 말’과 ‘단단한 말’도 관계를 맺는 두 가지 힘을 가리킨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어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언어를 이야기 속에서 함께 다룬다.
400번째 책이라는 숫자는 고 작가의 36년 창작 이력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는 1990년 ‘글힘돋움’을 시작으로 ‘가방 들어주는 아이’,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어린이에서 청소년까지 독자층을 넓히면서 장애와 다양성, 공존, 성장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작품에 담았다.
특히 자신의 경험은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중요한 토대가 됐다. 소아마비로 인한 지체장애로 휠체어를 이용해 온 고 작가는 장애인을 도움이나 동정의 대상으로 그리는 대신 학교와 가정,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인물로 작품 속에 등장시켰다.
‘가방 들어주는 아이’와 ‘안내견 탄실이’, ‘아주 특별한 우리 형’,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등이 오랫동안 학교 독서교육 현장에서 읽혀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애를 설명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어린이들이 등장인물의 관계와 갈등을 따라가면서 차이와 편견의 문제를 생각하도록 했다.
400권이라는 방대한 집필량과 함께 독자와 직접 만나는 활동도 이어왔다. 전국 학교와 도서관, 공공기관, 기업 등에서 진행한 강연과 ‘작가와의 만남’은 5천 회를 넘어섰다. 독서와 글쓰기뿐 아니라 인성교육, 장애인식 개선, 창의성 등을 주제로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국내에서 쌓은 작품 활동은 해외 평가로도 이어지고 있다. 고 작가는 세계적인 아동·청소년 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ALMA)의 2025년 한국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36년간 출간한 책의 누적 판매량은 500만 부를 넘어섰다. 단순 계산하면 한 권의 책을 낼 때마다 평균 1만2천500부가량의 독자를 만난 셈이다. 400권이라는 다작과 대중적 독서가 함께 축적됐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고 작가는 400번째 책에서도 새로운 독서 방식에 눈을 돌렸다. 어린이들이 접하는 콘텐츠가 문자에서 이미지와 영상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환경에서 웹툰의 접근성을 동화의 독서 경험으로 연결하는 실험을 택했다.
고정욱 작가는 “400권은 끝이 아니라 독자들과 함께 걸어온 36년의 기록”이라며 “앞으로도 아이들과 청소년, 모든 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형식의 작품에도 계속 도전하며 다음 목표인 500권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36년 동안 400권을 쓴 작가의 다음 숫자는 이미 정해졌다. 500권이다. 다만 그가 400번째 책에서 보여준 것은 숫자를 늘리는 작업보다 변화한 독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건넬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시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