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의 발견’을 넘어 ‘존재의 연대’로
보통의 작가들에게 캔버스는 일방적인 투영의 공간이다. 작가는 자신의 관념을 화폭에 일방적으로 주입하고, 관객은 그것을 감상한다. 그러나 청휘 안길원 화백의 작업은 이 소통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집는다. 그가 백두대간과 전국의 산야에서 채집한 유리알 원석과 석재 가루, 흙은 단순한 물감의 대용품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의 붓질 이전에 이미 수억 년의 시간을 품고 있던 ‘지구의 파편’들이다.
안 화백이 자연 재료를 고집하는 이유는 시각적 효과 때문이 아니다. 그는 인간이 자연을 ‘대상화’하는 현대 미술의 습성을 경계한다. 그에게 있어 회화란 자연과 인간이 화폭 위에서 벌이는 일종의 ‘공동 작업’이다. 자연이 스스로 품고 있던 시간의 결을 캔버스 위로 옮겨와, 그 위에 인간의 감성이라는 덧칠을 함으로써 완성되는 공생의 기록이다. 이는 기존의 풍경화가 보여주던 ‘인간의 시선이 점령한 자연’이 아니라, 자연의 실존 앞에 인간이 겸허히 고개를 숙이는 ‘경외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신학과 한의학, 그리고 캔버스: ‘통섭적 치유’의 미학
안길원 화백의 이력을 살펴보면 미술 이외의 영역인 한의학, 상담학, 신학이라는 이질적인 학문들이 등장한다. 흔히 이를 ‘다학제적 연구’로 치부하기 쉽지만, 안 화백의 예술 속에서 이 학문들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치유의 도구’로 수렴된다.
안 화백은 캔버스 앞에 서기 전, 한의학적 관점에서 인체의 에너지 흐름을 읽어내듯 화폭의 기운을 살핀다. 그는 상담학적 통찰을 통해 관람객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현대인의 결핍을 진단하고, 신학적 사유를 통해 그 결핍을 메울 위로의 논리를 구성한다. 즉, 그의 그림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읽히는’ 작업이다.
그의 작품이 유독 대작 위주인 점도 주목할 만하다. 500호, 수천 호에 이르는 압도적인 화폭은 관람객의 시야를 가득 채우며 주변의 잡다한 정보를 차단한다. 이는 명상이나 상담학에서 말하는 ‘몰입적 치유’의 과정과 흡사하다. 거대한 자연의 형상 속에 온몸을 던지게 함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상처가 자연의 광활함 속에 희석되는 기묘한 경험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안길원 화백만이 구현할 수 있는 ‘입체적 회화 처방전’이다.
◆캔버스 앞에 멈춰 선 ‘구도자의 방’
안길원 화백의 일상은 세간의 화려한 전시 이력과는 동떨어진 고요한 수행자의 그것에 가깝다. 그는 수천 페이지의 이론적 연구와 수만 시간의 현장 채집,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는 붓질을 병행한다. 예술을 노동으로 치부하지 않고, 이를 인간의 정신을 정화하는 거룩한 ‘수련’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가 발명특허를 받은 기법들조차 사실은 더 완벽하게 자연을 모사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자연이 가진 고유한 생명력을 훼손 없이 화폭에 옮기기 위한 고육지책에서 탄생했다. 재료를 빻고, 거르고, 혼합하여 최적의 발색과 질감을 찾아내는 과정은 고된 노동이지만, 그는 이를 통해 비로소 자연의 맥박을 화폭에 심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 미술이 지나치게 개념과 기교에 매몰되어 있을 때, 정작 예술의 본질인 ‘자연에 대한 경외’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픈 성찰을 던져준다.
◆‘인간주의’라는 닻을 내리다
안길원 화백은 항상 “예술의 종착점은 인간주의의 실현”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주의는 상처 입은 현대인들이 다시금 생의 의지를 회복하게 만드는 ‘생명 존중의 철학’을 의미한다.
그의 그림 속에서는 폭풍우 치는 바다도, 평온한 산천도 모두 인간의 마음을 닮아 있다. 그의 붓질은 때로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 안에는 반드시 희망의 빛 한 줄기가 서려 있다. 관람객들이 안 화백의 작품 앞에서 감동을 받고 안도감을 느끼는 것은, 그가 화폭에 심어놓은 ‘치유의 의지’가 비언어적 방식으로 그들의 영혼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결국 청휘 안길원 화백의 예술은 ‘보여주는 예술’에서 ‘느껴지는 예술’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살아내는 예술’로 진화하고 있다. 그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도서관에서 치유의 문장을 길어 올리고, 그것을 캔버스라는 무대에 옮겨 적어 세상의 상처를 봉합하려는 치유자다.
앞으로 안 화백이 보여줄 예술적 행보는 현대 미술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지향점이 될 것이다. 예술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위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청휘 안길원의 화폭 앞에 서서 그가 빚어낸 거대한 자연의 호흡을 직접 대면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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