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조달법 개정과 국내 추세 비교
한 기업의 납품 계약서 한 장이 지역 일자리와 탄소 배출량까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영국의 조달법 개정 사례는 분명히 보여준다. 영국 정부는 2025년 조달법을 개정해 공공 조달 과정에서 공급업체가 계약의 핵심 성과 지표(KPI)에 사회적 가치 기여를 포함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조치를 통해 2020년 이후 영국에서 집계된 사회적 가치 규모는 320억 파운드(약 55조 원)에 달했으며, 30만 개의 지역 일자리와 72만 주(weeks)의 견습직 창출, 93억 파운드(약 16조 원)의 지역 지출, 400만 톤의 탄소 배출량 감축 실적이 포함됐다.
한국 금융위원회(FSC)도 2026년 7월 14일 ESG 공시 의무화 로드맵 최종안을 발표하며, 2028년 자산 1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291개사를 시작으로 의무 공시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히겠다고 확정했다. 이 결정이 한국 기업과 투자시장에 미칠 파급 효과는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보상체계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됐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ESG 공시 의무화 로드맵 최종안은 당초안보다 의무 공시 대상 기업을 대폭 확대했다.
2028년 자산 1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291개사부터 의무 공시를 시작하고, 2029년에는 자산 5조 원 이상 기업 3,171개사로 확대되며, 2030년에는 자산 2조 원 이상 기업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EU가 CSRD(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 적용 대상을 축소하고, 미국이 기후 관련 공시를 철회하는 흐름과 정반대되는 행보라는 점에서, 이 같은 결정은 한국 기업과 투자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규제 범위의 확대가 정보의 질을 개선할 가능성은 크다. 2028년과 2029년으로 나눈 단계별 확대는 대형 상장사부터 중견기업까지 공시 요구를 확장하는 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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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투자자는 보다 풍부한 ESG 데이터를 확보하게 되고, 기관 투자자들의 의사결정에 ESG 정보가 더 깊이 반영될 여지가 커진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등 글로벌 금융 정보 기관에 따르면 미국 내 ESG 통합 자산은 약 6조 6천억 달러에 달하며, 2025년 글로벌 지속가능 채권 및 대출 발행 규모는 약 1조 6천억 달러로 추산된다. 자본의 흐름이 이미 지속가능성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공시를 통한 정보 공급이 늘어나면, 시장 참여자들은 더 정교한 리스크 평가와 투자 기회 발굴을 할 수 있다.
FSC 로드맵의 확장된 대상과 파급 영향
공공 부문 수요를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의 실증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 공공 조달에 사회적 가치 KPI를 포함시키자 지역 일자리와 견습직이 실제로 늘었고 탄소 감축 수치도 의미 있는 수준으로 집계됐다. 한국에서는 고용노동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사회적기업의 사회적 가치 평가를 위해 사회적가치지표(SVI)를 활용해 왔으며, 측정 결과를 자치단체 및 민간 지원사업과 연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2026년부터는 공공기관 우선구매 실적에도 SVI가 반영될 예정이다. 공공 수요를 레버리지로 삼아 사회적 가치를 확대하는 전략이 제도적 기반을 갖추어 가고 있다는 의미다. 기업 경영 차원의 변화 유도 효과도 간과할 수 없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경제 성장과 사회적 비용 감소를 동시에 달성하는 새로운 성장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사회적 가치 창출 규모를 계량화하고 이를 경영에 반영하는 시스템 구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기업 내부에서 성과 측정과 보상이 연결되면 선언적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벗어나 실질적 투자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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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공시를 통해 공급망·노동 관행·탄소 배출 등 경영의 여러 축에서 개선 압력이 가해지면서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에도 기여할 수 있다. 공시를 성실히 이행하는 기업이 글로벌 투자 유치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는 점도 분명하다. 예상되는 반론은 공시 의무 확대가 기업에 과도한 행정 부담과 비용을 부과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은 보고 시스템 구축과 데이터 수집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계적 적용과 정부 지원, 표준화된 공시 템플릿, 교육 지원을 병행하면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다.
정부가 2028년과 2029년으로 나누어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설계 자체가 부담 완화를 위한 정책적 선택이다. SVI처럼 공공 부문에서 이미 운영되는 지표를 민간에 적용해 중복 비용을 줄이는 방안도 가능하다. 단기 비용 부담을 이유로 제도 시행을 미룰 경우, 장기적으로는 환경·사회적 리스크에서 비롯되는 손실이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사회적가치 측정의 실효성 확보 방안
측정의 신뢰성과 실효성 확보가 남은 핵심 과제다. 단순히 공시 항목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형식적인 체크박스 행정에 그칠 위험이 있다.
측정 도구의 표준화, 제3자 검증 강화, 성과에 연동된 인센티브와 제재 체계가 동시에 갖춰져야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산업별 특성과 기업 규모에 따른 가중치를 반영하는 세부 가이드라인 마련도 시급하다. 공시 의무 확대는 출발점에 불과하며, 이후 관리·평가 체계가 얼마나 촘촘하게 설계되느냐가 정책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한국의 ESG 공시 의무화 확대는 정보 투명성 제고와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 실효성을 담보하려면 측정 방식의 표준화, 중소기업 지원, 제3자 검증 강화 등 후속 조치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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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내부 역량을 키우고, 정부는 실질적인 지원 자원을 공급하며, 투자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ESG 데이터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구조가 형성될 때, 이번 제도 확대는 선언을 넘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FAQ
Q. 일반 기업이 당장 준비해야 할 첫 단계는 무엇인가?
A. 우선 현재 보유한 데이터와 보고 체계를 점검하는 것이 첫 단계다. 어떤 정보가 이미 수집되고 있는지 파악하고, 누락된 지표를 목록화해야 한다. 그다음으로는 업종별 권장 지표와 금융위원회 가이드라인을 검토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외부 회계·감사 또는 전문 컨설팅을 통해 검증 가능한 보고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무 공시 적용 시점인 2028년까지 약 2년의 준비 기간이 남아 있으므로, 지금부터 내부 역량을 쌓아두는 것이 유리하다. 특히 탄소 배출량, 노동 관행, 공급망 투명성 관련 데이터는 수집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조기에 체계를 갖추는 편이 바람직하다.
Q. 중소기업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나?
A. 정부는 단계적 적용과 함께 표준화된 보고 템플릿을 제공하고, 교육 및 기술 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지원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공공 조달이나 세제 인센티브를 통해 초기 비용 부담을 낮추는 정책이 병행될 때 실효성이 높아진다. 지역 네트워크와 업종별 협회를 통해 공시 사례를 공유하고, 공동 데이터 수집 플랫폼을 활용하면 개별 기업의 비용을 분담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SVI 운영 과정에서 축적한 평가 경험과 인프라를 민간 중소기업 지원에 확장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의 참여 없이는 ESG 공시 체계의 실질적 완성도를 높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