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칼럼] 토마스 만의 중편 '기만'이 '은총'으로 바뀔 때

민병식

토마스 만(1875~ 1955)은 독일 출신의 소설가이며 평론가로 20세기 독일의 최고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사망 후 집안이 파산하자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1901년 '부덴부로크가의 사람들'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대표작으로 '키작은 프리데만',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 '마의산' 등이 있고 192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남편을 잃은 뒤, 미술가로 활동하는 딸 안나와 대학 입시를 앞둔 아들 에두아르트와 함께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귀족 가문 출신의 로잘리는 순리대로 나이 들어가는 삶을 관조하며, 별다른 사건 없이 포근한 삶을 누리고 있지만 어딘가 권태롭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공대를 지망하는 아들에게 꼭 필요한 언어, 즉 영어를 가르치고자 미국에서 건너온 켄 키튼이라는 스물넷의 청년을 영어 과외 교사로 들이게 된다. 

 

스물넷의 청년, 그는 유럽의 역사와 전통을 사랑하는 인물로 잘생긴 외모, 건장한 육체, 활발하고 유쾌한 유머 감각으로 아들 에두아르트뿐 아니라 로잘리까지 순식간에 매료된다. 그로부터 두달 뒤 폐경 통보를 받는 로잘리, 자신을 말라버린 껍데기로 생각하며 우울해하던 중 켄 키튼에게 반해버리고 처음의 두근거림은 점차 애틋한 연정과 뜨거운 열망으로 변해 마침내 켄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이성적인 안나는 어머니의 위험한 감정을 눈치채고 끊임없이 경고한다. 로잘리는 킨트로부터 불어온 사랑의 고통을 심장이 앓고 있다고 하고 안나는 관능일뿐이라고 한다. 안나는 그 감정을 모성애로 바꾸라고 하지만 로잘리는 기만이 답이 될 수는 없다고 한다. 

 

로잘리는 어떤 원인 모를 신체적인 변화로 인해 다시 생리를 시작하게 되고 자신이 실제로 젊어지고 있다고 믿는데 꽃이 만발한 여름날, 로잘리 가족과 켄 키튼은 홀터호프성으로 소풍을 가고 배는 라인강을 유유히 흐르고 로잘리는 흑고니들에게 줄 오래된 빵을 조금 먹는다. 로잘리는 굳이 흑고니들에게 줄 퍽퍽한 빵을 왜 그 시점에서 먹었을까. 오래된 빵이 암에 대한 죽음에 대한 복선은 아니었을까.

 

나중에 로잘리의 생리는 생리가 아니었고 자궁암의 증상인 하혈이었다. 즉, 로잘리가 다시 젊어진다는 느낌은 순전히 그녀 자신의 착각이고, 사실은 자기 몸이 죽음으로 향하고 있는 거였다. 결국, 로잘리는 자신이 기만당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지만 안나에게 너희로부터 봄이 있는 삶으로부터 떠나고 싶지 않지만 죽음이 없다면 어찌 봄이 오겠냐고, 죽음이야말로 삶의 가장 위대한 수단이라며 자신에게는 죽음이 사랑의 기쁨으로 나타났는데 그건 기만이 아니라 은총이라고 말한다.

 

작품 속의 기만은 서로가 누굴 기만한 것일까. 난 스스로가 스스로를 기만했다고 생각한다. 생리인 줄 알았던 것이 자궁이었던 기만, 한창 어린 젊은이를 좋아하고 사랑했던 힘이 젊어지는 회춘을 가져왔다고 생각한 기만, 그러나 죽음 앞에서 주인공의 기만이 은총으로 바뀌는 모습은 우리의 남아 있는 삶은 어떻게 살 것이며 어떻게 죽음을 맞이한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

 

 

[민병식]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시인

현) 한국시산책문인협회 회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뉴스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2 전국 김삼의당 공모대전 시 부문 장원

2024 제2회 아주경제 보훈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

이메일 : sunguy2007@hanmail.net

 

작성 2025.07.09 10:50 수정 2025.07.0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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